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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24 사상 최초의 초강대국 로마제국 (NHK, 2005) 3/3

제 3부 저무는 태양 로마제국


하드리아누스 장벽은 영국 북부, 로마 제국 최북단 영토에 건설된 120km 길이의 장벽으로 켈트족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14대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이름을 땄다. 10,000명의 병사 주둔하였고 1.5km 마다 초소를 설치하였고 초소엔 8명의 병사가 주둔하였다.

하드리아누스 장벽 근처에서 요새촌으로 불리는 빈돌란다 요새 유적이 발견됐다.

제국 전체 예산의 절반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병사들에게 제공하였다. 음식과 집은 무료였다.

빈돌란다 유적에서 발견된 서판에는 "추방", "탈영병" 등의 단어가 발견됐다.

빈돌란다 요새에 주둔하던 병사는 105년에 시작된 2차 다키아 전쟁터(현재의 루마니아 영토에 살던 다키아 민족과 치른 전쟁으로 로마군이 승리)로 보내졌다. 대부분 가족이 있었던 병사들은 재배치를 꺼려 탈영했을 것으로 보인다.

막대한 군사비는 제국을 위협했지만 수도 로마에서는 여전히 호화로운 생활이 계속되었다. 심지어 음식, 옷과 보석, 현금까지 나라에서 지급해 줬다. 로마의 카라칼라 목욕탕은 1,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건설비는 오늘날 $350,000,000 상당에 달한다.

로마제국 은화의 은 함유량이 98% -> 50% -> 30% -> 1% 까지 떨어진다. 늘어나는 지출로 지불능력을 초과하는 돈이 필요하여 저질 주화를 제작하기에 이른 것이다. 통화팽창-저질주화 제조의 악순환이 심화되었다.

14대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막대한 군사비 절감을 위해 도나우 강 북부와 유프라테스 강 동부 지역의 영토를 포기하려 하지만(강을 국경선 삼으면 요새 건설과 장벽 건설 불필요, 주둔 병사의 축소 가능) 영토 확장의 주역들이었던 당시 원로원들의 반대에 부딪쳐 실패하였다. 황제는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 뒤를 이은 황제들은 지출 억제를 위해 호화스런 생활방식을 규제하려 한다.

그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그림. <로마의 타락> 토마스 쿠투르 作

도를 지나친 로마인들의 사치 생활과 제정 상황 악화로 병사들의 임금이 체불되어 반란이 일어나고 군 지휘부의 권위는 상실된다.

해군 함대를 지휘하던 카라오시우스는 영국의 황제를 자처하여 갈리아 지역에서 지지를 받아 자신만의 주화를 제조한다. 황제를 자처하는 반란이 일어난다.

다섯가지 주화가 같은 해에 발행되었는데 저마다 다른 얼굴이다. 서로 다른 지역에 복무하던 로마군 사령관들이 황제를 자처하며 생긴일이다.

내전이 발생하자 이틈을 타 적들이 침입하였다. 하드리아누스가 죽은 뒤 140년 후 로마 수도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화려한 공공기관을 허문 돌로 보호장벽을 세우기에 이른다.

395년 겨울,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나뉜다. 21년 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다.



2011/01/24 - [감상/다큐] - 사상 최초의 초강대국 로마제국 (NHK, 200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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