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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03 돈의 힘(THE ASCENT OF MONEY) (BBC, 2008) 1/6

제 1부 탐욕의 시작(Dreams of Avarice)


잉카 제국엔 돈이란 것이 없었다. 귀금속은 미적인 가치만 지닐 뿐이었다. 금은 해님의 딸, 은은 달님의 눈물이라 불렀다.

프란시스코 피사로 : 잉카제국을 정복하고 페루의 수도인 리마를 건설했다.

까하마르까 : 페루 북부 산악지대 까하마르까 주(州)의 수도로 잉카문명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스페인 통치 250년 동안 안데스 산맥에서 2만 5천톤의 은을 캐냈다. 탐욕에 빠진 스페인 왕가는 그들이 꿈꾸던 것 이상으로 부유해졌다. 하지만 스페인의 경제적 정치적 몰락을 막을 수 없었다. 은의 가치를 하락시킬 정도로 지나치게 많이 채취한게 문제였다. 똑같은 물건에 더 많은 가치가 매겨지면서 물가는 오르기만 했다. 교환가치 만큼만 값어치가 있다는 돈의 속성을 몰랐던 것이다.

4,000천년전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점토판에 금융거래를 기록했다.

돈은 믿음이다. 화폐를 발행한 중앙은행에 대한 믿음, 수표를 발행한 은행에 대한 믿음, 돈은 금속이 아니라 믿음인 셈이다. 종이나 은, 점토, 또는 컴퓨터 화면이든 받는 이가 믿으면 그뿐이다. 상호신뢰체제의 근간을 이룬다.

영어의 Credit 은 라틴어 Credo 나는 믿는다 에 어원을 두고 있다. 신용이란 개념이 없었다면 세계 경제사는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대 문명은 대출과 차용에 많은 부분 의존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피보나치의 계산의 책(리베르 아바치)에는 동양 수학 사상이 소개되어 있다. 아라비아 숫자가 로마숫자보다 우수하다고 소개한다. 피보나치 수열 역시 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회계, 환전, 이자계산에 새로운 계산법을 적용했다.

두캇(ducat) : 12세기부터 1차 세계대전까지 유럽에서 국제화폐로 사용했던 금화

초기 대부업자는 환영받지 못하고 천대 받았다. 그들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의 유대인들은 게토 누오보(ghetto nuovo) 라는 강제 거주 지역에 살아야 했다. 베네치아에서 유대인의 존재가 용인된 이유는 기독교도 상인들이 하지 않는 서비스, 즉 대금업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기독교도들에겐 이자를 받는 것이 죄악이었다. 유대인들은 그들 형제, 유대인들끼리 이자를 받는 것은 안되지만 남에게서 받는 것은 문제 삼지 않았다.

베네치아 유대인들은 작은 탁자를 놓고 의자에 앉아 돈놀이를 했다. 영어 Bank 는 의자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Banco 에서 유래됐다.

고리대금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유대인들은 사회로부터 소외받았다. 그럼에도 채무자들이 유대인에게 돈을 갚은 이유는 그들이 규모를 키웠기 때문이다. 15세기 이탈리아 게토 지역에 합법적인 은행이 생긴다.
은행의 출현과 함께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메디치家 가 동방무역과 금융업으로 번성하기 시작한다. 메디치 가문은 막대한 영향을 행사한다. 미켈란젤로부터 갈릴레오까지 르네상스 시대 전체를 후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디치가는 환전업 조합 가운데 하나였다. 1390년 이전만 해도 메디치가는 동네 불량배로 저질 폭력으로 유명했다. 피렌체에서 각종 범죄를 저질러 17년 간 가문 중 5명이 사형을 당했다. 그러던 중 지오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가 등장해 양모조합 거리에서 소규모 사업을 이끌어 피렌체의 명가로 성장시킨다.

지오반니 메디치는 고리대금 방지법을 피할 수 있는 독창적인 회계법으로 사업을 합법화 시킬 수 있었다. 이자대신 환전의 대가로 수수료를 받았다. 이자가 드러나지 않는 형태로 신용을 사고 팔았다. 고리대금업이 은행업으로 진화한 순간이었다.

리그로 세그레토 : 지오반니 메디치가 쓴 메디치 은행의 성공담이 기록된 책

메디치 은행의 성공은 다양성을 추구한데 있다. 조합형태로 분권체제를 유지했다.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까지 영역을 넓혔다. 규모확장과 분산을 통해 대출에 따른 위험을 줄일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채무자의 비용을 낮출 수 있었다. 이 부분이 고리대금업자와 메디치가의 차이였다.

지오반니의 아들 코시모는 부친 사망 20년 후 피렌체의 군주와 다름없는 자리에 오른다. 그는 보티첼리의 '메달을 들고 있는 청년(1475)'의 주인공 이기도 하다. (보티첼리는 '동방박사의 경배(1476)'에서도 메디치가의 금융성공을 그려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현대 금융이 미국으로 넘어오면서 세계 경제의 판도가 바뀌었다. 미국은 채무를 발판으로 성장한 나라이다. 메디치 은행이 부유층만을 상대한 반면에 미국 은행들은 누구에게나 돈을 빌려준다.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는 파산자들로 유명하다.  각종 담보 대출, 전당포, 혈액 구매 등 파산자들을 상대로 하는 경제 활동이 활발하다. 중세 이탈리아와 영국에서 파산은 경제적으로 심각한 것이었으나 미국 자본주의에서는 빚을 졌다 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1898년부터 파산법에 따라 채무 청산과 개인 회생이 보장되었다. 오늘의 파산자가 내일의 억만장자가 될 수 있었다. 실패 후 재기의 기회가 주어진다.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 가운데 일부가 연체되었다고 생각하고 파산은 채무이행계획을 다시 세우는 것에 불과했다.

대출은 경제성장의 기초다. 은행의 출현이 가능해야 고리대금업에서 다음단계로 성장이 가능하다. 채무자들이 정상적으로 대출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고리대금에서 벗어날 수 있다. 투자자 역시 믿고 맡길 곳이 있어야 자신의 지갑을 열 수 있다.

하지만 은행이 해결책은 아니다. 2007년, 멤피스의 불량 채권이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야기했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이 증권의 형태로 바뀌어 무분별한 투자자들 사이에서 거래되어 은행과 채무자의 정상적인 관계가 깨진것이 원인이다. 금융업이 지나치게 복잡해져 연이은 금융혁신으로 멤피스 같이 가난한 가정에서 받은 주택담보대출을 CDO(Collateralized Debt Obilgation : 부채담보부증권으로 회사채나 대출채권 등 기업의 채무를 기초자산으로 유동화증권을 발행하는 금융기법)로 바꿔버렸다. 납을 금으로 만들고 쓰레기를 우량채권으로 만드는 금융의 연금술이 가능했던 것은 은행과 함께 현대 금융의 양대 축을 이루는 채권시장이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2011/01/03 - [감상/다큐] - 돈의 힘(THE ASCENT OF MONEY) (BBC, 200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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